1988년 수험생 수와 대입 합격의 비밀: 그 시절 대학 가는 매우 쉬운 방법
목차
- 1988년 대학 입시의 시대적 배경과 수험생 현황
- 당시 대입 제도의 핵심: 선지원 후시험 체제
- 1988년 수험생 수가 입시 결과에 미친 영향
- 전략적 선택이 승패를 갈랐던 매우 쉬운 방법들
- 학력고사 점수와 눈치작전의 실체
- 1988년 대입 성공을 위한 구체적인 전형 분석
1. 1988년 대학 입시의 시대적 배경과 수험생 현황
1988년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격동의 시기였으며 교육계 역시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었습니다. 베이비붐 세대의 영향으로 수험생 숫자가 상당했던 시기였으나, 입시 제도 자체의 특성 때문에 현재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습니다.
- 수험생 규모의 정점: 1988년은 이른바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던 시기로, 전체 수험생 숫자가 80만 명을 상회하는 거대한 규모였습니다.
- 올림픽 열기와 교육 환경: 서울 올림픽 개최로 인한 국가적 고양감 속에서도 대입 경쟁은 여전히 치열했으며, 학생들은 오로지 ‘학력고사’라는 단판 승부에 사활을 걸었습니다.
- 대학 진학률의 변화: 현재처럼 대학 진학이 보편화되기 시작하던 과도기로, 명문대 진학은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2. 당시 대입 제도의 핵심: 선지원 후시험 체제
1988년 입시의 가장 큰 특징은 오늘날의 수능 체제와 달리 ‘선지원 후시험’ 방식이었다는 점입니다. 이 방식은 수험생의 심리적 부담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전략적 선택에 따른 기회를 창출했습니다.
- 선지원 방식: 수험생은 시험을 치르기 전, 자신이 지원할 대학과 학과를 먼저 결정하고 원서를 접수해야 했습니다.
- 단판 승부 학력고사: 지원한 대학에 가서 직접 시험을 치렀으며, 그날의 컨디션과 문제 난이도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었습니다.
- 내신 성적의 반영: 학력고사 점수와 고교 내신 성적을 합산하여 최종 합격자를 선발하는 구조였습니다.
3. 1988년 수험생 수가 입시 결과에 미친 영향
엄청난 수험생 수는 곧 높은 경쟁률을 의미했지만, 역설적으로 ‘허수’와 ‘배짱 지원’의 교차점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 양적인 팽창: 수험생 수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하위권 학생들의 수도 비례하여 많았으며, 이는 상위권 대학 경쟁률의 착시 현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 심리적 압박: 수험생 수가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학생들은 위축되었고, 이는 오히려 안전 지원을 선택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 모집 정원의 한계: 당시 대학의 정원은 지금보다 제한적이었으나, 정부의 대학 정원 조정 정책에 따라 특정 학과들의 문호가 넓어지던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4. 전략적 선택이 승패를 갈랐던 매우 쉬운 방법들
1988년 당시 입시 전문가들이나 소위 ‘입시 도사’들이 말하던 매우 쉬운 대학 합격 방법은 철저하게 정보력과 심리전에 근거했습니다.
- 미달 학과 공략하기: 선지원 시스템의 맹점을 이용하여 경쟁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비인기 학과에 지원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 분할 모집 대학의 선택: 전기 대학과 후기 대학으로 나뉘어 있던 시기를 활용하여, 전기에 하향 안전 지원을 하거나 후기에 실력보다 높은 대학을 노리는 전략이 유효했습니다.
- 지방 거점 국립대 활용: 당시에는 서울권 명문대 못지않게 지방 국립대의 위상이 높았으나, 서울 집중 현상을 피해 지방으로 눈을 돌리면 합격 가능성이 비약적으로 상승했습니다.
- 야간 교대 및 특수학과 지원: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야간 학과나 특정 목적을 가진 학과들은 상대적으로 커트라인이 낮아 진입 장벽이 낮았습니다.
5. 학력고사 점수와 눈치작전의 실체
1988년 입시의 꽃은 단연 ‘눈치작전’이었습니다. 원서 접수 마지막 날까지 학교 담벼락 너머로 실시간 경쟁률을 확인하며 주사위를 던졌습니다.
- 경쟁률 실시간 확인: 컴퓨터 전산화가 미비했던 시절이라 대학교 게시판에 붙는 수기 경쟁률을 보고 마지막 순간에 원서를 집어넣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 폭발과 펑크의 미학: 작년도 커트라인이 높았던 학과는 당해 연도에 기피 대상이 되어 점수가 대폭락(펑크)하는 현상이 잦았습니다.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 소위 ‘대박’을 터뜨리는 방법이었습니다.
- 배짱 지원의 승리: 실력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경쟁률이 극도로 낮은 곳에 소신 지원하여 합격하는 사례가 매년 속출했습니다.
6. 1988년 대입 성공을 위한 구체적인 전형 분석
성공적인 대입을 위해서는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전형 요소들을 완벽히 파악해야 했습니다.
- 체력장 점수 확보: 당시에는 체력장 점수가 대입 총점에 포함되었습니다. 만점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었으므로, 여기서 감점을 당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이었습니다.
- 주관식 문제의 비중: 학력고사에는 주관식 문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부분 점수를 얻기 위한 꼼꼼한 답안 작성이 당락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였습니다.
- 제2외국어 선택 전략: 많은 수험생이 기피하는 제2외국어 과목에서 고득점을 획득하면 총점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매우 수월했습니다.
- 내신 등급 관리: 고교 내신이 등급제로 반영되었기 때문에,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은 학력고사 점수가 조금 낮더라도 상위권 대학에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 전후기 대학의 연계: 전기 대학 낙방 시 후기 대학에서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을 선택할지에 대한 ‘플랜 B’ 설정이 합격의 매우 쉬운 길을 열어주었습니다.